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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올리기

마음이 들뜬다

by 왕짱구 2021. 1. 19.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이 씨익씨익, 하고 페달만 밟으셨다. 나는 얼씨구, 내 말이 먹혀드는구나 싶어 주마가편 격으로 말을 쏟아 냈다.

"실은 제 정신 수준은 보통 사람의 서른 살에 도달했다고 판단한지 어언 2개월이 넘었습니다. 어쩌면 대학도 갈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싼 학비를 안 대주셔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버지는 자전거를 세우고 거의 표준말에 가까운 억양과 어휘로 말했다. "고맙다. 내 걱정까지 해 주다니.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아라. 시간을 줄 테니."

그러고는 달빛 비치는 서산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는 신작로 아래 냇가로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가 오줌을 누러 가시나 보다, 생각하고는 자전거 위에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오시지 않았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자전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 내리다가는 자전거와 함께 신작로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앉았던 안장을 움켜쥐고 내가 하느님을 서너 번은 족히 불렀을 때 비로소 아버지가 올라왔다.

"달밤에 신작로 위에서 자전거 타고 혼자 있으니까 세상이 다 니 아래로 보이더냐?"

아버지는 자전거를 끌면서 말씀하셨다. 그 물음에는 천재인 나도 대답할 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사십대 초입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내게 그렇게 말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본다. 준비되지 않은 채 몸과 마음만 들뜬 아이를 마음으로 감복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세상의 틀에 우겨 넣으려는 한 내 중년은 아버지의 중년에 비할 수 없이 유치하다.

젊은 아버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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