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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같은 글10

그 소리가 그 소리다. 아침부터 버티면서 시작한 하루도 쓴 약처럼 나를 다 낫게 할 것이라 믿으면서 이렇게 속상하고 힘겨운 순간이야말로 그녀가 내 생각을 하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계속 그녀가 힘들고 아프길 바라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매사를 둥글게 요리조리 살피던 조심성에도 우물쭈물 넘어가려는 속 마음만은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화하기가 짜증이 났다. 그 오랜 비밀스러움. 그래 지금 우리 상황에 그게 맞아라고 쏘아 붙였다. 나에게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늘 작은 역할이 주어졌다. 이번 주 목요일에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이게 정말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릴 때 본 적 있는 그저그런 영화이길. 내게 주어진 대사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디서 본 것처럼 하면 어디서 본 .. 2023. 5. 29.
지겨운 것들 오늘 아침 카페에 남자 셋이 체육복 차림으로 들어왔어. 한 명이 다리를 다친 건지 절뚝거리고 있더라고. 그리곤 축구하다가 다친 네가 생각이 났어. 아무도 모르는 이 좁아터진 카페까지 다리를 질질 끌며 쫓아오는구나. 너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어디에도 충실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어. 그때 네가 그 지겨운 것들을 나열하면서 해맑게 웃었기 때문에 나도 편안함을 느낀 걸까. 아니면 이번에도 나혼자 공원을 몇 시간씩 거닐다가 집으로 그냥 돌아가는 게 익숙한 걸까. 2022. 11. 5.
개쩌는 내 인생 마치 좁은 우리 안의 다친 짐승들처럼 맹렬히 서로에게 상처주기 바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살았던 오랜 동네를 떠났다. 이 좁은 집 벗어나고 싶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더 좁은 집으로 이사를 와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내가 뭔가를 원할 때 그 이유가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해줄 수 없는 것을 바랄 때 가장 상처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구 요즘 포폴 만드는데 안 넣는 거 아까워서 구냥 올려 본댜... 힘 빼고 기본이나 잘 하자고 머리는 이해하는데 그것은 마치 라면수프 없이 MT가서 김치찌개 담당한 기분처럼 막막하다. 기본이 없어서 스프라도 챙긴 것을 탓하실 건지요 선생님. 직관적이면 유치한 것 같고 알 듯 모를 듯 숨기.. 2022. 10. 18.
화성으로 가주세요. 다음은 김정선 님의 『열 문장 쓰는 법』 중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글쓰기를 해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글을 써보면 한계가 느껴지면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글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모순적이지만 나를 더 발견하게 된다. 마리오네트가 관절염을 앓고 있다면 이런 상태일까? 누군가 마구 밀치고 들어 올려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되는 기분. 신경질적인 주인이 팔다리를 감고 흔드는 기분이다. 다행히 아가미로 뻐끔거리기나 하는 생선이 아니라서 들이마신 공기로 금세 이성에 눈을 떠 정신이 차려졌다. 그다음엔 회한 섞인 한숨을 내뱉으면 된다. 어제 그녀와 술을 마셨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가 되면 분명히 그녀는 주변을 걸어 다니자고 할 테니 미리 편한 신발을 신고 나갔다. 그런데 그녀는 자주.. 2022. 9. 6.
쓰다 보니 여름의 낮처럼 길어진 글 나는 여름밤 행성에 불시착해서 둘이 걸어 다니는 상상을 했다. 너와 이야기하면 혼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빨리 시간이 흘러 늘 아쉬웠다. 게다가 인터미션 없는 무대 위에 배우처럼 쇼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보니 차라리 불시착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한 것 같다. 위를 올려다보니 밤하늘보다 더 검은 나무가 있었다. 나무가 엄청 가깝게 느껴졌고 하늘이 멀리 있는 것 같아 사방이 아주 어둡지는 않다 생각했다. 이렇게 밝잖아! 좀 더 걷자고 소리쳤다. 그것은 사실 걷는 척하며 좀 더 이야기하자는 소리다. 생각해보니 불시착 행성인데 돌아갈 집이 어디 있겠어. 숨을 곳도 찾지 않고 여유롭게 산책이나 하다니 말도 안 된다. 허점이 없는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했다. 능력 있는 감독들이 .. 2022. 5. 7.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우리가 그곳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적 있어?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나는 항상 기분이 들떴다. 엉성한 모양이 하나의 완벽한 도형이 되듯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내가 좋았다. 동굴이 깊을수록 날이 어두울수록 서둘러 걸으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는 듯이. 그러나 마음먹는 일은 점점 부담스러웠다. 드넓은 바다처럼 시원한 그늘이 있는 나무도 되어보고 가끔은 새빨간 해 질 녘 노을처럼 사랑받고 싶었을까. 그러다가 마음이 지치면 포기하고 만다. 오 이건 제가 찾아 헤맨 도형이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하나의 도형이 된다는 건 나를 잃는다는 건데 뭔지도 모르면서. 엉성한 생김새를 채워.. 2021. 12. 25.
이원영의 <펭귄의 여름>을 읽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는 알 수 없는 것. 어떤 연구는 이렇게 긴 호흡이 필요하다. 192p 반복되는 삶 속에서 참고 기다렸을 때에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의미도 있다. 212p 놀랍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펭귄이 되었다. 펭귄에 빙의하다니 좀처럼 관찰하는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구나 생각했지만 오히려 굉장히 일상적인 모습들이라 갑자기 내가 펭귄이 된 것이다!!!!!! 갑분펭을 뒤로하고,,, 펭귄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다. 우리의 모습을 마주할 때 펭귄을 더 사랑하게 되겠지. 집 없는 서러움을 알기에 지구의 온난화가 더 걱정되었다. “궁금하셈? 알고싶음?” 게슴츠레 눈을 치켜뜨게 된다. 무브를 듣고 있지도 않았는데. 언젠가 생각을 읽는 기계로 뒤뚱거리는 펭귄의 치명적인 생각을 알게 될 지도 .. 2021. 7. 30.
후카자와 우시오, <가나에 아줌마>를 읽고 중요한 것은 마음 둘 곳이다. 180p 가나에 아줌마의 중매는 재일교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동포들끼리의 결혼은 척박한 땅을 비집고 내릴 뿌리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젊은 세대에게 중매가 고리타분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자유연애의 설렘은 자력으로 뿌리를 내리는 재일교포들의 생명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믿음직스러운 동질감이 우리의 현실적인 마음 둘 곳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늘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인식하며 사는 것이다. 평생 어떤 지점에 머물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상대방의 뿌리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결혼할 나이가 되면서 부모님 뜻처럼 보이는 현실에 순응하게 되는 .. 2021. 7. 19.
김훈, <남한산성>을 읽고 사직은 흙냄새 같은 것인가, 사직은 흙냄새만도 못한 것인가 191p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373p 정랑은 안시성과 남한산성 사이에서, 천 년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미친 척하고 있는 것일까. 일어설 수 없고 내디딜 수 없고,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보는 것인데 .. 2021.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