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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같은 글

그 소리가 그 소리다.

by 왕짱구 2023. 5. 29.

아침부터 버티면서 시작한 하루도 쓴 약처럼 나를 다 낫게 할 것이라 믿으면서 이렇게 속상하고 힘겨운 순간이야말로 그녀가 내 생각을 하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계속 그녀가 힘들고 아프길 바라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매사를 둥글게 요리조리 살피던 조심성에도 우물쭈물 넘어가려는 속 마음만은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화하기가 짜증이 났다. 그 오랜 비밀스러움.

그래 지금 우리 상황에 그게 맞아라고 쏘아 붙였다.
나에게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늘 작은 역할이 주어졌다.

이번 주 목요일에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이게 정말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어릴 때 본 적 있는 그저그런 영화이길. 내게 주어진 대사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디서 본 것처럼 하면 어디서 본 장면들이 차례대로 나열되길 바라면서 그곳으로 갔다.

다시 좁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머리맡 창가에 그녀의 자동차 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어느 토요일 오후처럼 그녀가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쪽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면 문쪽으로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긴 시간 그녀가 들려준 것들이 가짜라 느껴지면서
이제 그녀가 아닌 모든 소리가 그녀의 것처럼 들린다. 작은 소리도 꺼지지 않는다. 이곳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녀가 가득차고 있다.


그 놈이 그놈이다에서 힌트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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