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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같은 글

김훈, <남한산성>을 읽고

by 왕짱구 2021. 7. 5.


사직은 흙냄새 같은 것인가, 사직은 흙냄새만도 못한 것인가 191p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373p

정랑은 안시성과 남한산성 사이에서, 천 년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미친 척하고 있는 것일까. 일어설 수 없고 내디딜 수 없고,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보는 것인데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서 정랑은 미친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 미친 척을 하고 있다면 정랑은 미치지 않았겠구나. 정랑은 제정신으로 제 앞을 내다보고 있겠구나. 임금은 또 지는구나. 정랑이 이기는구나. 정랑이 임금을 이기고 묘당을 이기고 남한산성을 이기고 칸을 이기는구나. 매 맞은 정육품 수찬이 이기고, 죽은 정오품 교리가 이기고, 미치지 않은 정오품 정랑이 이기는구나……. 587p

교리 윤집과 부교리 오달제가 척화신으로 묶여서 청진에 가기를 자청하는 차자를 올렸다.
젊은 당하관들이었다.

임금의 팔이 떨렸다.
임금은 두 당하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한 번도 어전에 나아가지 않았다.
참혹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662p



극한의 고립이 성 밖의 길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일까 좀처럼 말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길로 나가지 못하고 임금의 귓전을 때리고 성 안을 빙빙 돌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말을 위한 말, 이기기 위한 말로 성을 쌓게 되었다. 언 마루가 녹을 때까지 눈물로 울부짖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성벽 근처에 작은 싸움이 일었고 가끔씩 승리했다.

'그러면 어쩌란게냐...'

청병이 지나간 자리는 재만 남는다. 소식마저 끊어진 성 안에서 백성들은 불안해했다. 나날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모자란 식량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모두 잡아먹고 개 짖는 소리마저 끊어진 날에도 말[言]소리는 이어졌다.
‘강이 녹았느냐…?’ 고집 센 언 땅이 녹고 강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면서 고요한 성에도 활기가 찾아왔다. 봄과 함께 성 안에는 알 수 없는 생기가 돌았다. 칸이 와있었고 백성들 사이에 곧 성 밖으로 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대신들 역시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보이지 않는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갈 것인가 열릴 것인가를 말 할 수 없었다. 화친이 그 길이라면 궁으로 돌아가게 되면 죄를 물을 것이고, 앞장선 대가는 후세에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화포와 무너지는 성벽, 배고픔과 셀 수 없이 널린 청의 군대 앞에 더 악화될 상황이 무모하게 느껴졌다. 결국 성벽은 백성의 피와 눈물로 허물어지고 왕이 걸어 나왔다. 신하들에게 적의 아가리에 머리를 드미는 것을 무릅쓰라 할 순 없지만 본 적도 없는 젊은 당하관이 척화신으로 나설 때에 임금은 떨었다.

'그대의 말이 아름답구나' , '그대의 말이 어렵구나'
듣기 좋은 말이지만 그게 괜찮을까? , 말을 왜 그따구로해?

<남한산성>은 말이 주를 이룬다. 바른말은 길로 인도하며, 길이 아닌 것은 길바닥일 뿐이다. 길바닥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되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말을 한다. 대의인가 삶인가 하는 문제를 자존심과 이상, 처한 현실 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영끌매매냐 전세냐,,? 닥매라구? ㅎ_ㅎ;;; 높은 연봉이냐 밸런스냐, 가정을 꾸리느냐 독신으로 살 것인가 등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고 대립하고 있다. 인생이 남한산성으로 몰리면 우리는 말을 어떻게 구분해야할까?
시대가 변해도 말의 무게는 남아있다.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선 시대의 대의와 명분에 공감한다. 연군지정 우국지정으로 지금까지도 우리가 배우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뱉은 말에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생각한다. 의미 없는 비난과 뒤로 숨어버린 책임 없는 말들. 이기기 위해 부끄러움도 없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들이 영원히 남아 후대로 전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바닥을 전전하며 되어지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 말이 맞는가?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창피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말의 무게도 변할 수 있다. 말도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뱉은 말 때문에 목이 댕강 날아간다면? 한 번만! 한 번만! 아무래도 시대와 맞지 않다. 시도 가벼워지고 말도 가벼워진다. 어쩌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은 그저 우리의 생각에 옷을 입히는 것이라 자유롭게 날아가고 흩어지고 퍼져서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진심을 듣는데 지키지 못할 말은 하는 게 아니에요 따끔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당장 나도 말의 무게에 걸맞게 하루 종일 묵언수행을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치욕스러운 사건 앞에 도망치듯 읽었다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일본 새끼들의 경술국치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국치가 병자년에 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힘겹게 읽었다. 주전이냐 주화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인간사 오답노트용으로는 의미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 지배층들아' 하며 그저 어쩔 수 없는 피지배층적 사고를 했을 뿐이다. 좋아질 수 있을까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