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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같은 글

후카자와 우시오, <가나에 아줌마>를 읽고

by 왕짱구 2021. 7. 19.

중요한 것은 마음 둘 곳이다. 180p

가나에 아줌마의 중매는 재일교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동포들끼리의 결혼은 척박한 땅을 비집고 내릴 뿌리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젊은 세대에게 중매가 고리타분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자유연애의 설렘은 자력으로 뿌리를 내리는 재일교포들의 생명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믿음직스러운 동질감이 우리의 현실적인 마음 둘 곳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늘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인식하며 사는 것이다. 평생 어떤 지점에 머물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상대방의 뿌리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결혼할 나이가 되면서 부모님 뜻처럼 보이는 현실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게 사랑에 빠져 새로운 행복을 기대하기도 한다. 한국남자는 박력이 있어요. 카리스마랄까. 같은 민족이라도 타인일 뿐인데 동포니, 조국이니를 앞세워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비겁하다. 나는 주체적이고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 당신이 한국인인 거, 아무렇지도 않다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다 보니, 매일매일 어딘가 모를 결핍을 느끼고 더 강렬한 무언가를 좇고 있는 것 같다. 198p
그러나 곧 실제로 그 집안의 일원이 되자 그것이 얼마나 귀찮고 복잡한 일인지를 몸소 겪게 되었다. 431p


사주를 봐주고 있는 미숙은 재일교포 남편과 결혼에 대해 깊은 외로움과 서러움을 느낀다. 홀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아지지 않는 생계를 생각하면 끝까지 싸워서라도 재일교포 남자에게 시집 따위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들은 애초에 미숙처럼 한국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라고.그리움과 후회 속에 괴로워하면서도, 허우적거릴 새도 없이 힘겨운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이 외로움과 서러움은 에이주와 그의 가족에게서 자신과 같은 민족성, 한국인 다움을 찾아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게 분명하다. 201p

한국인과 결혼을 했더라면, 아버지 곁에 있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회환은 남편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의지해야 할 가족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동포라 해서 골치 아픈 일 없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가족이 되기 위한 노력은 늘 있어온 문제이니까. 어느 집이라도 뜯어보면 문제는 있다고 단순하게 치부할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집집마다 치열하게 대립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고부갈등과 합가, 종교와 제사, 출산과 육아, 교육, 자존심 문제 등등. 다른 뿌리라는 문제가 이러한 일상의 문제보다 더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민족이라는 것은 서로를 결코 보듬어 줄 수 없는 한계를 나타낼까? 민족성은 도미코의 노력 앞에서는 그저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일본인. 김 씨 가족의 며느리로서의 전력 질주는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뿌리보다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온 살아남은, 끈질긴 뿌리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40년 동안이나 참기름을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도미코는 도쿠지의 아내이자, 김씨 집안의 며느리, 그리고 한국인이 된 것이다. 479p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은 재일교포들에게도 반복되는 일상이다.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를 모시며 그 쇠약함에 죄책감과 인내심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 더 끈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끝없이 정체성을 묻고 확인해야 하는 고단함과 치열함은 알 수 없는 영역의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귀화한 선수들의 사연은 다시 보아도 늘 아팠다. 그들의 애환을 보편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특수하게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의 시선일 뿐이지만 나는 전과 많은 것이 달라짐을 느꼈다.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기준 조차 없던 시절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그 기준에는 어떠한 편견도 개입되어서는 안되다는 것 역시 중요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행복을 지켜봐 준다면 그들의 삶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저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우리를 생각해보면서…